손글씨에 대한 마지막 글입니다.
손글씨 루틴이 선사한 느림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며 글을 3가지로 나누어 작성해보았습니다.
손글씨는 속도가 아니라 온도다
우리는 ‘속도’에 중독된 시대에 살고 있어요. 빠른 답변, 빠른 실행, 빠른 정보. 손가락 끝으로 수많은 정보를 넘기고, 터치 몇 번으로 대화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죠. 그렇게 우리는 멈추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순간들은 대개 느리고 조용하게 찾아오지 않나요?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퇴근길 늦은 시간의 편지, 감정이 정제되지 않은 눈빛… 그런 느림이 주는 온도는 속도보다 훨씬 깊습니다. 손글씨 역시 그러한 ‘느림의 언어’입니다.
펜을 들고 종이에 글씨를 옮기는 행위는 우리의 시간을 천천히 움직이게 만듭니다. 문장을 한 줄 쓰기 위해 생각하고, 멈추고, 표현하려 애쓰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게 되죠.
하루 5분, 나와 마주하는 시간
손글씨 루틴을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글씨를 연습하려는 의도였지만, 이내 그 시간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고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혹은 저녁, 딱 5분만이라도 다이어리나 작은 노트에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이 스쳐갔는지, 짧은 문장이라도 손으로 직접 쓰면 그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감정의 구조화’가 됩니다.
한 번은 감정적으로 복잡한 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몹시 답답했는데, 손글씨로 그 감정을 적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글쓰기’가 아닌 ‘쓰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타자보다 느리게 나를 따라오는 펜촉 덕분에 내 감정이 천천히 흘러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 이후로는 손글씨가 제 일상의 리듬을 되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졌어요.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고요하게 머무는 연습이자, 나를 재정비하는 조용한 의식 같은 것.
아날로그의 고요함이 내 삶에 미친 영향
손글씨 루틴을 지속하면서 변한 건 단지 글씨체가 아니었어요. 가장 크게 바뀐 건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이전에는 목표나 일정에 집중하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그 속도를 자각하고, 중간에 ‘쉼표’를 찍는 법을 배운 것이죠.
손글씨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느끼는 일이에요. 손끝에서 나오는 흐름은 무의식적이면서도 아주 솔직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글이라는 점에서 치유의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 작은 종이와 펜의 습관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놀라웠지만, 이제는 확신하게 되었어요. 글씨를 쓸수록 더 깊이 숨을 들이쉬게 되고, 더 따뜻하게 나를 바라보게 되었으니까요.
손글씨는 느림의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쏟아지는 속도에 맞서는 조용한 저항이며, 자기 자신과의 사적인 언어입니다.
매일 단 몇 분의 습관이 마음을 정돈하고 삶의 온도를 높여주는 도구가 되어준다는 것—그것이 손글씨 루틴이 선물해준 가장 근사한 변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