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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끝으로 남기는 마음 — 손글씨, 그 아날로그적 위로

by seonhyen 2025. 6. 25.

디지털 세상에서 멈춘 시간, 펜을 들다.

오늘은 완전한 디지털로 지배된 세상에서 손글씨가 주는 아날로그적 위로에 대한 글을 작성해보려 합니다.

손끝으로 남기는 마음 — 손글씨, 그 아날로그적 위로
손끝으로 남기는 마음 — 손글씨, 그 아날로그적 위로

 

디지털 세상에서 멈춘 시간, 펜을 들다.

어느샌가부터 우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일’에 점점 익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자판이 종이보다 먼저 손에 익고, 메모장보다 캘린더 앱을 더 자주 열어보게 되죠. 스쳐 지나가는 메시지, 쌓여가는 알림 속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조차 빠르고 효율적인 쪽으로 기울어 갑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이 있어요. ‘천천히 쓰는 마음’입니다. 손글씨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시간과 마음이 쌓인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쓴 글은 느리고, 삐뚤고, 지워지기도 쉽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사람 냄새 나고 진심으로 느껴지죠.

 

저는 몇 해 전, 생일에 친구에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반듯하지 않은 글씨와 몇 번이나 지운 흔적이 남아 있는 편지였는데, 그걸 읽는 동안 마치 친구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디지털 메시지에선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글씨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어요. 그 이후로는 나도 특별한 사람에겐 꼭 펜을 들어 보게 되더라고요.

 

 

손글씨가 전하는 감정의 결 — 마음이 스며드는 이유


우리가 손글씨에 이끌리는 이유는, 아마 그 안에 ‘감정의 결’이 스며 있기 때문일 거예요. 글씨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죠. 어떤 날은 힘주어 눌러 쓰고, 어떤 날은 흘려 쓰고, 때로는 그 날의 기분이 글씨체에 그대로 녹아 있기도 해요. 그래서 손글씨를 보면 글자만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까지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 커플은 주고받은 손편지들을 모아 결혼식장에서 전시했다고 해요. 그 안에는 첫 데이트의 설렘, 오해 후의 사과,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들이 모두 녹아 있었고, 글씨체의 변화는 두 사람의 마음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말없이 증명해주고 있었다고 합니다. 타이핑된 글이었다면 과연 그 감정까지 느껴졌을까요?

우리는 모두 나만의 손글씨를 가지고 있어요. 누군가는 동글동글하고, 누군가는 날렵하고, 어떤 이는 부끄러워 감추려 하지만, 사실 그 모든 글씨는 고유하고 소중합니다. 그것은 타인이 대신 써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이 남길 수 있는 마음의 자국이니까요.

 

기억 속의 편지 한 장이 주는 위로

어릴 적, 책상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작은 편지들을 떠올려봅니다. 친구가 건넨 수줍은 쪽지, 엄마가 도시락 뚜껑에 붙여준 손글씨 메모, 사랑하는 이가 고백처럼 썼던 엽서 한 장. 우리는 그 작은 종잇조각을 왜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걸까요?

그건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과 마음이 ‘물리적 형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글씨는 쉽게 삭제되지 않습니다. 편지는 시간이 흘러도 퇴색할 뿐 사라지지 않고, 다시 꺼내 보는 순간, 그때의 감정과 기억이 다시 살아납니다. 마치 오래된 향수를 맡았을 때처럼, 특정한 감각이 순간의 기억을 건드리는 거죠.

 

요즘은 손글씨로 편지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가치가 생긴 것 같아요.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씨를 쓰고, 봉투에 담아 보내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향한 ‘정성의 언어’가 되는 거니까요.

 

손글씨는 느리고 서툴지만, 그 안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 마음, 정성, 기억, 그리고 관계. 디지털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이 아날로그적 위로가,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 아닐까요?